낭파, 왕국 다시
돌아보기

과거의 찬란한 영혼이 오늘을 거닐다 – 수코타이, 그리고 낭파

개인전 | 권학봉

낭파, 왕국 다시
돌아보기

태국 최초의 왕국 수코타이, 그 찬란했던 시대의 영혼이 ‘낭파’라는 천상의 존재로 현재를 방문한다. 작가는 전통 복장을 입은 모델을 통해 과거와 현재,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넘나들며, 역사의 환상이 오늘의 시간 속에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연출한다.

  • 수원국제사진축제 초대 개인전
  • 기간: 2017년 11월 1일 ~ 11월 30일
  • 장소: 수원 노을빛 갤러리 (수원제일교회 내)

수코타이(สุโขทัย)는 13세기경, 크메르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부속국가로 시작해 람캄행(Ramkhamhaeng) 대왕의 등장과 함께 태국 문화의 기틀을 세운 역사적 도시이다. 태국 역사에서 실존 유산이 가장 오래된 왕국이기도 하다.
대나무를 주된 재료로 쓰는 ‘밤부 문화권’ 특성상, 동남아시아에는 오래 보존된 유물이 드물다. 따라서 고대 문명을 복원하거나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 삼국지연의나 제갈량의 남정설처럼 추측만 존재할 뿐, 실질적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 속에서도 수코타이 유적은 예외적이다.
크메르 문명과 벽돌 건축의 결합으로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은 드문 문화유산이다.
불교가 꽃피던 시기의 흔적들이 잘 남아 있어, 불상과 사원의 터전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현재는 ‘수코타이 역사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이번 작업은 이 유적과 현대 사이의 시간적 충돌을 중심에 두었다.
‘수코타이의 천사’라 불리는 신화적 존재 ‘낭파(Nangfha)’가, 오늘날 역사공원을 다시 찾아와 당시의 영광을 떠올린다는 설정 아래 촬영을 진행했다.
비현실적 존재인 낭파를 표현하기 위해, 모델에게 전통 복장을 입히고 공중에 뜨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장면은 실제로는 단순한 점프샷으로 구현했지만, 그 설정은 환상성과 기억, 그리고 역사적 시간의 층위를 상징한다.

이 아이디어는 1997년경 구독하던 프랑스 사진잡지 『PHOTO』에서 본 어떤 작가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잡지 이사 과정에서 사라져버려 이름조차 알 수 없지만, 그 잡지에서 3~4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것으로 보아 꽤 저명한 작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시 이 작업의 원작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이번 작업은 그에게 바치는 한 동양 사진가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현실이 환상의 표현이라면, 낭파는 그 자체로 수코타이 왕국의 기억이며 역사다.
찬란했던 시대는 사라지고, 다시 발견되고, 풍화된 채로 남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또한, 언젠가 잊히고 재발견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 날이 온다면, 사진 속 낭파처럼 우리 또한 그 시절을 다시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 작업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주신 수코타이 역사공원의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7년 태국 람빵에서 권학봉씀

이 프로젝트에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